기본정보
안똔 체홉의 ‘담배의 해독에 관하여’는 담배의 해로움에 대한 이야기지만 담배의 해로움이 단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작품엔 해로운 담배에 대해서 이야기 하러 나온 남자의 하소연과 푸념으로 가득하다.
배경은 한 지방의 클럽 무대다. 성실하게 다림질을 한 것 같지만 한 눈에도 세월의 때가 낀 연미복을 입은 뉴힌이 당당하게 등장한다. 뉴힌이 연단 앞에 선 이유는 음악학교 교장인 아내가 자선을 목적으로 한 강연을 자신에게 요청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지식인으로 소개한 뒤, 그는 담배의 해독에 관한 강연을 시작한다.
담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는 그는 자꾸 이야기가 산으로 향한다. 딸들에게 웃음거리가 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내에게 허수아비, 독사, 사탄 등의 욕설을 들었던 일화 등을 털어놓는다. 아내가 강연에 왔는지 안 왔는지 연신 힐끔거리면서 눈치를 보는 모습도 나약한 공처가 모습 중 하나다.
담배 강연은 안중에도 없고 아주 작정한 듯 인생 푸념과 아내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는 뉴힌을 통해서 관객 역시 담배의 해로움에 대한 강연을 망각하게 된다. 관객은 망각된 자리에서 초라한 아버지의 초상을 만나게 된다. 뉴힌의 담배 강연은 19세기 러시아 공처가와 21세기 아버지의 간극을 좁혀 가는 시간인 셈이다.
또한 ‘담배의 해독에 관하여’에는 체홉의 문학적 황금기에 종종 등장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텔리겐차(지성인)’의 과도기적 모습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가령. 그럴싸한 연미복을 입고 있지만 사실 오래되고 낡은 연미복이었다는 상징성, 또한 30년 넘게 학문적 속성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지만 강연를 통해서 그의 지성과 사유가 전혀 빛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학문적 업적보다 아내를 도와서 자질구레한 학교 일을 소화하고 있다는 점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이러한 지점들은 체홉의 4대 장막과 여타 작품 속에서 지성인의 의무를 계획하고 이행하지 못하는 인텔리겐차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은 짧고, 강렬하다. 가정과 사회에서 작은 존재로 전락해 버린 아버지의 슬픔과, 담배 강연을 까맣게 잊고 푸념을 바쁘게 토해내는 유쾌한 풍자가 동시에 녹아 있다. 무엇보다 체홉은 이 작은 인간에 대한 애정과 위로를 잊지 않았다. 아내가 강연장에 도착하자 재빨리 강연을 하는 척 연기하는 뉴힌은 마지막에 이런 대사를 남긴다. “Dixi et animam levavi!” 영혼이 가벼워졌다는 의미이다.
위치정보
- 시설명충남문화재단
- 주소32416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예학로 10-22 충남전문건설회관 2층